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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사업] [2012년 9월 21일 매화중텃밭이야기] 있는그대로 그리기

최고관리자
2016.02.16 16:07 10,99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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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심은 알타리의 새싹이 올라왔다.



백로 절기 가기 무섭게 추분이 왔다. 23일이 추분이다. 추분이 지나자 마자 밤이 낮을 이기어 무섭게 해가 짧아진다. 밭에 있으면 꼭 어둠이 뒤통수로 달려드는 것 같다. 사람도 해를 바라는 생물이라 그런건지 이렇게 빠르게 해가 짧아지면 대뜸 월동준비 걱정부터 앞서고, 언제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아쉽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세월가는게 아쉽다고 했더니 도통 반응이 없다. 하기야. 빨리 커서 어른되고 싶은 아이들과 머리 히끗해지는 나이에 들어선 동네 아줌마가 세월가는 속도를 똑같이 느끼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테지.


이날은 밭에서 관찰그림 "있는 그대로 그리기"를 했다. 말그대로 그림솜씨 뽐내라는게 아니라 그대로 그려보는 날이다. 배추잎에 얹은 지푸라기 하나까지 그대로. 그러다보면 아이들은 자신이 키우는 작물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기회를 갖고, 선생님들은 간만에 얌전히 앉아있는 아이들을 뚦어져라 바라보는 기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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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그리기는 끝까지 있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 그래야 파이파리 끝이 노래지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고, 유독 벌레가 많이 먹은 배추잎을 발견할 수 있다. 재민이는 잘 그리다가 배추잎맥을 그리며 휘갈겼다. 수없이 많은 배추잎맥을 일일이 그리자니 어지간히 힘들었겠지.
"여기서부터는 있는 그대로 그린게 아니라 휙휙 안보고 그린게 너무 티가 나네.... 다시 그리자."
"파는 초록인데 다 같은 초록이 아니야. 자세히 보면 밑에서부터 끝에까지 여러가지 색으로 되어있어."
"잘 그리고 나서 색칠할 때 대강대강 칠했네."

기철이랑 지원이는 유난히 그리기를 어려워했다. 저렇게 복잡하게 생긴것을 어떻게 그리냐고 성화다. 아예 시작도 안하고 있다. 그러더니 기철이는 제일 쉬운 파를 선택했다. 그림을 그릴 때 좀더 옆에서 말로라도 도와줄걸 그랬다.
그림은 신기하게 아이들이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잘 보여준다. 건성건성 바라보면 그림도 건성건성이다. 있는 그대로 그리기는 있는 그대로 옮겨놓는 솜씨는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다. 사실 그런 솜씨야 고만고만 비슷하다. 사물을 바라보는 집중력이나 해석력, 좀 과장하자면 사물과의 소통능력의 개성이 드러나는 지점이 재밌는 활동이다. 다섯번을 그려도 깻잎의 잎맥을 모자이크로 표현해놓는 아이처럼 말이다. 그리고 결과를 취하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과정을 드러내는 활동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텃밭에 어느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자연현상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관찰할 기회는 아이들에게 언제든지 새로운 발견을 선물한다.
오늘 작물과 텃밭, 자기노동에 대한 애정이 조금은 더 생겼을까.




오랜만에 오줌으로 배추 웃거름주기 활동을 했다. 냄새가 난다면서도 여자아이들 말고는 욕심내 자기 밭에 부어준다.
앞으로 몇주는 중간고사, 축제 등 이래저래 학교 행사등으로 모이기가 어렵다. 부디 벌레에 모두 양보하지 말고 키우고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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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일을 마치고 들어가기 직전 땅콩을 하나 후벼봤다. 잦은 비로 혹시 썩었을까 걱정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아직 덜 여물어서 몇주 뒤에 캐야겠다. 두주(두뿌리)를 캤는데 현규가 밥에 넣어 먹겠다고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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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작밭중 알타리밭 하나가 아예 싹이 안나왔다. 더이상 알타리 씨가 없어서 아이들과 쪽파를 보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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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밭의 대파. 어지간히 안자란다. 웃거름도 줬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얼마전에 심은 쪽파와 크기가 비슷하다. 사람들이 쪽파냐고 물어보면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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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민이 밭에 배추 하나가 안자라고 있다. 뿌리가 제대로 땅속에 들어가지 못해서 그럴거다. 재민이는 무만 흙을 잘 덮어주면 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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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뿐 아니라 무도 제법 잘자라고 있다. 땅을 제대로 높여주지 않아서 끝까지 잘 자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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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중 갓끈동부가 아주 탐스럽다. 수확해서 지난주에 가져가지 못한 친구들과 나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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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이 몇십만원이 들었다는 화단에 심은 수입산 관상용 화초들. 예쁘긴 예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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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산 관상용 화초들 사이에 기를 쓰고 풍선덩쿨과 나팔꽃을 심었다. 풍선덩쿨이 늦자라 이제 풍선열매가 맺혔다. 누구 손이 풍선을 탐하는 걸까... 길쭉한걸 보니.... 누군지 알겠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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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일은 아니어도 습관이 되어버리면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건너뛰지 않고 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 물론 건성건성 형식적으로 일지를 쓰는 상황이 탐탁하지는 않다. 보통은 일지가 '오늘은 무엇무엇을 했다'로 한 두줄 쓰는 것으로 끝난다. 그래서 이날은 무조건 20줄을 쓰고 가라고 했다. 할 얘기가 없다고 아우성...... 자기정리를 할 줄 아는 것에 감사하며 더 큰 욕심은 좀 뒤로 미루기로 쉼과 이야기했다. 뭔가 쓰고 있는 모습이 예뻐 보이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이 어른이기 때문일까. 아이들은 '후딱 쓰고 집에 가야지'라는 생각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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